작성일 : 09-01-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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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민호
 조회 : 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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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과 함께 한 산행이라 YB 잡기장에 올립니다.>
불상 뒤쪽에서 택시에서 내리니 바로 근처에 있던 후배들이 인사를 한다. 만나기로 한 시각은 10시였는데 모두 일찍 나와 있다. 예상치 않았던 혁중이도 나와 있다. 혁중이는 27일 산행부터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침에 함께 짐을 들어주기 위해 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우이동은 한산하니 평일 같다. 이런 한적함이 좋다. 하루재로 올라가는 길은 우리를 안도시키기에 충분하였지만 이후 백운산장까지의 길은 빙판길이었다. 생각보다 눈이 많다. 인수, 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가면 못 갈 것도 없다.
백운산장에서 짐을 챙기고 벨트를 차고 혁중이를 내려보내고 인수C코스로 향했다. 암벽화로 갈아신고 등반을 준비한다. 형룡이는 릿지화를 신겠다고 한다. 그래 좋을대로 해라. 첫 피치를 올라가니 세컨인 형룡이가 헤맨다. 올라오더니 장갑 떨어뜨리고, 정신 없는 모양이다. 용준이 또한 릿지화로 버텨보다가 안되겠던지 암벽화로 갈아신는다.
선배도 암벽화신고 선등하는데 그냥 하는대로 따라오지, 릿지화로 개기겠다는 용기가 가상타. 이렇게 쉬운 코스의 후등도 제대로 못하는 후배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암벽, 빙벽, 워킹, 예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후배는 선배의 잘못인가. 본인 자체의 문제인가.
둘째피치를 올라섰다. 조금만 힘들면 엉덩이를 빼고 로프에 매달리는게 모두 익숙해져있다. 힘을 쓰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은 등반능력을 저하시킬 뿐이다. 이럴 땐 줄을 슬쩍 풀어줘야 하는데 날이 추워 나도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에 나의 의지를 실현하지 못한다. 신치의 줄을 당긴다.
둘째피치에서도 아까처럼 개기면 내려가려 했는데 근근이 따라오는 꼴을 보니 그래도 가야겠다.
셋째피치를 올라섰더니 제트기류 버금가는 겨울 칼바람이 분다. 아래쪽과는 다른 딴세상이다. 날이 비록 춥긴 했으나 장갑을 벗고 등반할 만 했는데 여기 상황은 히말라야다. 후등자 확보는 다음 얘기고, 먼저 갖고 온 모든 옷을 꺼내 입었다. 뒤에 올라오던 형룡이는 바람이 적게 부는 지점에서 피치를 끊도록 하여 아이들이 추운 곳에서 떨지 않도록 하였다. 덕분에 나는 다운 입은 동태가 되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인수C 코스의 등반은 끝난다. 여름에는. 여기부터는 완만하게 정상까지 이어진다. 보통은 로프를 안쓰고 오르기도 한다. 이 날의 상황은 여기부터가 시작이었다. 완만한 크랙 슬랩이 모두 얼어있다. 오히려 경사가 있는 지금까지의 구간이 더 편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코스 상의 인수C 등반은 다 했고 이제 정상으로 가서 하강하느냐의 문제인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주장인 용준이의 의견을 물었다. 로프를 써서 정상을 가자고 한다.
젠장, 나는 하강하고 싶었는데. 걸어가는 구간을 로프를 사용하며 오른다. 얼어있는 구간을 길게 가고 싶지 않아 중간에 프렌드 하나로 피치를 짧게 끊고 형룡이를 올린다음 다시 올라간다. 평소 가던 크랙구간은 너무 많이 얼어있어 좌측 슬랩구간으로 돌아 오른다. 간간이 얼어있는 부분을 피해 가고 싶은데 스탠스는 얼음이 차있고 맨질맨질 구간만 바위가 드러나 있으니 환장하겠다. 거기에 미친 듯한 바람까지. 발을 뗄 수가 없다. 멍청하게 슬랩에 모든 몸을 바짝 붙이고 바람이 잦아지기만 기다린다. 바람이 좀 줄어들면 겨우 한걸음 옮긴다. 이런 식으로 슬랩 가기는 처음이다.
“형, 어떻게 가요?”
“줄 잡고 그냥 빨리와.”
이건 등반이 아니다. 가는 게 장땡이다.
정상에서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한 후 하강을 준비한다.
우리 셋은 로프 한 동으로 등반했다. 인수C는 피치가 짧아서 굳이 세 명에 로프를 두 동 쓸 필요가 없다. 후배들에겐 내가 로프 한 동을 챙기겠다고 했다. 그래야 쓰지도 않는 로프를 더 가져오지 않는다. 로프 한 동으로도 두 번이면 하강이 가능하다.
바람은 계속 미친듯이 분다. 하강 로프를 던지지 않고 사린 로프를 한 팔에 들고 하강하였다. 바람 때문에 몸이 자꾸 오른쪽으로 흘러간다. 하강하여 중간지점에 셋이 모였다. 로프를 회수하려는데 어디서 어떻게 꼬였는지 로프가 잘 내려오다가 끝부분이 내려오지 않는다. 이 바람에 로프가 제대로 내려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용준이가 내려오지 않는 로프를 타고 올라가겠다고 한다. 아서라. 지금 위의 상황이 어떻게 꼬여있는지 모르는데 그걸 픽스로프로 믿고 올라가다가 어떻게 되려고 하냐.
내려온 남은 줄을 이용하여 내가 먼저 하강했는데 끝이 조금 짧다.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서 캐머롯 두 개를 설치하고 갖고 있는 모든 슬링과 확보줄까지 연결하여 후배들이 잡고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형, 그 캐머롯은 두고 가는거에요?”
“야, 내가 학교 로프는 저렇게 걸어두고 가도 내 장비는 그러지 않는다.”
캐머롯을 회수하여 클라이밍다운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가져온 유일한 로프는 하강지점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장에 도착하니 따뜻하지는 않지만 온기가 느껴진다. 일단 먹자. 함께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용준이는 학교에 가서 로프를 가져오겠다고 한다. 갔다오면 4시간은 걸린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고민 끝에 구조대에서 로프를 빌링 방법을 찾는다. 구조대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로프를 빌릴 허락을 받았다.
용준이가 구조대에 로프를 빌리러 내려가고 밥을 하고 용준이가 올라오고 저녁을 먹고 가볍게 소주 한잔 하고 잔다. 형룡이가 속이 계속 안좋다고 한다. 다행이다. 셋 보다는 둘이 훨씬 빠르다.
후배들이 해 준 떡국을 아침으로 먹고 용준이와 나는 구조대에서 빌린 로프를 갖고 고독길로 향한다. 형룡이는 산장에 남기로 한다. 이 날은 26일 금요일이며 저녁에 나는 이대에서 스포츠클라이밍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시간 맞춰 가기 위해서는 빨리 등반을 마쳐야했다.
나는 빙벽화와 아이젠, 바일 한 자루를 챙겼고, 용준이는 암벽등반만 준비했다. 고독길 출발지점에서 암벽화로 갈아신고 출발했다. 아무리 추워도 릿지화보다는 암벽화다. 어짜피 스탠스는 얼어있을거고 모서리를 사뿐사뿐 밟고 가려면 암벽화가 나을 것 같았다. 발의 따뜻함을 포기하고 꽁꽁어는 대신 편한 등반.
출발까지는 좋았다. 얼음이 없었다. 그러나 둘째피치부터 어떻게 가야할지 답이 안선다. 모든 스탠스가 얼었다. 바일로 긁어봐도 깔끔하게 긁어지지 않는다. 답이 없다. 그냥 가는거다. 죽진 않겠지.
동굴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용준이가 오고 동굴 속을 지나가는데 그것조차 힘들어한다. 20kg는 감량하거라. 다음은 더 답이 안나온다. 빙벽화를 신어도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곳이 모두 얼어있다. 일단 암벽화로 계속 버틴다. 장갑을 벗고 크랙을 올라선다. 갈 수 있을거야...... 바위를 잡으면 한기가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목을 타고 올라온다. 내 손이 아닌 것 같다.
여차저차 귀바위 밑까지 도달했다. 용준이는 영자크랙을 한 번도 안가봤다고 한다. 영자 스타트보다 훨씬 아래쪽에서 돌아가면 더 쉽단다. 이런 요령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때까진 시간 여유도 있고 쉽다니 용준이에게 선등을 양보한다. 선등하며 내 캐머롯 .4호를 밑으로 떨어뜨린다.
“밑으로 내려가서 주워올래. 새거 하나 살래?”
“여기서 프렌드 박고 하강해도 되겠죠?”
캠 박고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올라가서 하강을 두 번이나 하는 것도 그렇고 눈밭 풀숲에서 장비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일단 그 무식한 용기를 가상히 여긴다.
“그냥 올라가 임마. 새로 하나 사면 되지”
내려갔다 온다면 최소 한 시간 반은 소비해야 한다.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영자를 우회하고 참기름바위 앞까지 왔다. 그런데......
이럴줄은 몰랐다. 완전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소비하며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다. 평소처럼 정상적인 슬랩등반은 불가능. 눈 뭉치는 것도 불가능. 밑에서 아이스바일을 던져보았지만 택도 없었다. 결국 빙벽화로 갈아신고 아이젠을 신었다. 우측의 드라이툴링용 닥터링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구멍은 찾았는데 두 번째 구멍이 너무 아래로 깍여있어서 바일이 걸리지 않는다. 바일 한 자루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는 않은데 드라이툴링 코스는 바일이 걸릴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젠 신고 슬랩등반.
닥터링을 잘 깍아 아이젠을 이빨을 올리고 닥터링의 턱 위로 발을 올렸다. 스텝이 너무 높다. 마른 바위라면 체중을 실으며 올라서겠는데 살짝 얼은 슬랩을 아이젠 신고 서기가 너무 무섭다.
여기서 미끄러진다면 바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아이젠이 아무렇게나 걸릴것이고 그러면 발목 다치기에 딱 좋다. 내가 여기서 발목을 다친다면 학교 로프 포기는 물론이고 다시 고독길로 하강, 산장으로 이동, 그리고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정상을 앞에두고 포기 할 순 없었다. 포기는 김장할 때 쓴다. 서 보자. 조심스레 체중을 실으며 턱에 올라서니 잡목이 훨씬 가까워졌다. '끼긱끼긱' 아이젠 이빨이 화강암의 홀드를 찾으며 장비점 돈버는 소리를 낸다. 바일을 던져서 잡목에 걸고 올라갔다. 살았다.
어제, 오늘 인수 정상은 우리가 전세냈다. 그 어느 누구의 흔적도 볼 수 없었다.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구조대 로프를 이용하여 하강하며 보니 어제 회수 안된 우리 로프는 비둘기길 마지막 크랙에 살짝 ,그것도 아주 살짝 끼어있다. 당길때는 그렇게 안빠지더니. 어제 용준이가 이 로프를 타고 올라왔다면 오늘 용준이와 함께 등반할 수 없었다.
하강을 마치고 산장으로 와서 먼저 배낭을 꾸려 이대로 향했다. 이대에 오니 손가락 끝은 아리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시범은 가급적 자제하고 주둥이로만 지시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니 후배들은 부실에서 잔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후배들은 도봉산장으로 이동하고 혁중이가 밤에 도봉산장으로 합류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엑셀시오 도봉점에서 보기로 했다.
다음날 용준이가 엑셀시오에서 나의 캐머롯 .4호를 리필해주고 짱구바위로 올라갔다. 로스트애로우, 앵글, 부가부, 빅브로, 버드빅, 러프, 로우볼, 알루마헤드, 코퍼헤드, 써클헤드, 트라이캠, 훅, 에이리언(하이브리드 포함) 등 각종 장비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용준이부터 인공등반을 시켰다.
원래의 크리스마스 등반 계획은 빙벽등반이었다. 하지만 4일동안 같은 얼음을 찍는 건 너무 따분하고, 자칫하면 ‘따뜻한 겨울’덕에 샤워하며 빙벽등반을 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수 이틀, 도봉 이틀로 계획을 잡았고, 인공등반을 가르치려 한 것은 못다한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총회가 있었고 선봉이는 주장이 되었다. 당시 나는 장비를 만드는 업체에서 일을 했기에 필요한 게 있다면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었다.
"너 뭐가 필요하냐? 재학생을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도와줄게."
"형, 인공등반을 가르쳐 주세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주말마다 교육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내가 도와주려 했던 건 유형의 물질이었지, 무형의 스킬이 아니었다. 그 대답 한 마디에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요청한 인공등반을 가르칠 시간 없이 빨리 가버려 나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던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것이었다.
토요일은 용준이 선등, 혁중이 후등 회수. 밤에 가볍게 소주 한 잔 하고. 늘 술은 모자르다. 내 꼬비 시절 소주 사오는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더니 혁중이가 더 먹자고 한다. 그런데 모두들 서로 술을 사러 가겠다고 한다. 나와 함께 있기 싫은 모양이다. 주장인 용준이가 인내심을 발휘하여 모자른 정도에서 그쳤다.
어제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놓았다. 그 순서에 의해 순서가 오면 자연스레 선등과 후등이 결정되었다. 다음날은 형룡이 선등, 용준이 후등이었다. 부엉이바위에서 등반을 마치고 형룡이는 일찍 가야한다고 해서 먼저 내려보내고 혁중이 선등, 용준이 후등 회수로 인공등반을 마쳤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밑에서 입으로만 가르쳤다. 숙제 요청한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숙제는 하면 된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하산하여 가볍게 술 한잔 하고 후배들과 같은 버스를 탔다. 후배들을 학교 앞에서 먼저 내려보내고 집에 오니 뭔가 허전하다. 배낭을 집에 벗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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