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10-01 15:12
9월28일 인수봉 등반후기
 글쓴이 : 김형용
조회 : 2,598  
9월 28일 인수봉 등반 후기

사실 9월 개강등반의 목표는 신입생인 나의 인수봉 정상 등정이었다. 인수봉 정상을 밟는데에는 성공하였지만 벅차오르는 감격이 밀려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아..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느낌뿐,
그동안 규태형께서 잘 교육해 주시고, 재학생 형들께서 많이 데리고 다녀주신 덕택에 등반에 있어 그다지 어려움을 못느낀 때문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등반은 달랐다. 내가 해본 암벽등반 중 가장 힘든 등반 이었고 내가 얼마나 바위에 대해 갈 길이 먼 사람인지도 깨달았다.
 어프로치를 끝내고 첫피치 출발점으로 가는 것도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옆에 크랙들도 많고 앞에는 실크랙이 나있어서 슬랩으로 가야할 지, 옆의 큰 크랙들을 따라 가는 건지 난감했다. 먼저 올라간 형들께서 옆의 크랙을 따라 오르라고 했다. 길을 알고 나자 쉽다.
 
1피치가 시작이 되었다. 사실 이 1피치는 1학기 때 내가 첫 인수봉 등반을 도전했을 때 오아시스로 가기위한 길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 때에는 오히려 굉장히 쉽게 갔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크랙에 넣은 손을 자꾸 넣었다 뺐다 하게 되는지.. 퇴보한 느낌에 살짝 열이 받는다.

 2피치 시작이다. 혁중형께서 미리 주의를 주셨다. 크랙의 홀드가 작으니 주의하라고.. 의외로 홀드는 작지 않았다. 언더 홀드이고, 경사가 직각이 아니라 기울어져서 홀드가 안보여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일단 들어갔다 싶으면 편한 홀드였다. 하지만 문제는 발이었다. 난 인공홀드나, 인공외벽의 벽면 같이 마찰력이 좋거나, 혹은 디디기 편하도록 튀어나온 홀드에 길들여져서 인수봉과 같이 발디딜 곳이 확신이 안서는 곳은 발에 힘만 줄 뿐 정확한 포인트를 못 잡았고 밸런스 역시 잘 잡지 못했다. 끝내는 오른손을 위쪽으로 옮기다가 발이 터져 추락.. 후등이라 약 1미터 정도 추락한 것 같지만 5.8이라는 난이도를 되새기며 한숨 쉰다. 그리고 나서 바로 등반을 재개하고 그 다음부터는 점점 지면에서 멀어지는 고도감에 두려워 과감하지 못했을 뿐 어렵게 등반하지는 않았다.
 
3피치는 혁중형께서 가장 쉽다고 하셨다. 뭐가 쉬운 건지.. 3피치의 밴드 트래버스는 내가 선등이라면 정말 하기 싫을 것 같은 트래버스이다. 3피치 시작지점에 있는 나무에 슬링을 걸고 펜듈럼하면 안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다리를 덜덜덜 떨면서 트래버스를 한다. 무사히 해냈지만 선등이라면 분명 추락했을 것이다. 트래버스 중간에 텐션받은 느낌을 두차례 정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혁중형께서 알려 주신대로 잡는 곳이 편했고 비교적 쉽게 갔다.
 
내 한계와 내 부족한 실력이 가장 많이 드러난 것이 4피치이다. 혁중형께서는 멋지게 단 한번의 텐션을 받고 등반해 내셨지만 난 몸재밍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몸으로 내면화 하지 못해, 그리고 발을 어디서 어떻게 옮겨 가야 쉬운지, 인수바위에 대한 루트 파인딩이 전혀 되지 않았다. 바위를 넓게 보지 못하고, 내 몸동작을 바위 속에서 그려내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힘든 등반을 하며 약 두 세 차례의 후등 추락을 하고 쌍볼트에 확보했다. 추락할 때 바위에 부딪힌 무릎이 아프고, 안경 코받침대가 떨어져나가 안경이 흔들거린다. 내가 뭐하러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위를 한다, 등반을 한다, 선택을 했을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5피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대변이 마렵기 시작한다. 아뿔싸... 혁중형 용준형께서 장비 착용전에 독수리를 잡으셨는데, 난 하나도 마렵지 않아 괜찮겠지 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쌍볼트 걸고 중간에 대변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사력을 다해 대변을 볼 수 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등반을 하기로 한다. 5피치는 기억하기에 슬립이 한 두번 났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재밍할 때 좀 힘들었고 턱을 넘은 다음에는 무리가 없었다.
 
귀바위 슬랩 시작이다. 턱에 오르고 첫 퀵드로를 거는 것이 혁중형의 동작이었는데, 턱에 오르니 밑이 까마득한게 정말 무섭다. 그리고 난 키가 작아 척 퀵드로에(만약 선등을 설 경우) 제대로 클립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혁중형은 늠름하게도 첫 번째 퀵을 거시고 등반을 하신다. 중간에 약간 슬립이 난 듯 싶었다. 하지만 잘 올라가신다. 내 차례이다. 슬랩면을 밟아 보지만 자꾸 미끄러질 것 같아 두렵다. 슬랩은 추락해도 후등이라 전혀 염려가 없어도 확신이 가는 발 홀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계속 불안하다. 하지만 어쨌든 두 차례의 슬립 이후에 혁중형께서 계시는 곳에 간다.
 
인수봉 정상으로 가는 관문이다. 영자 크랙옆 침니이기도 싶고 크랙이기도 싶은 곳으로 직상하는데, 고독길로 갔을 때도 꽤 싶게 간 곳이 대변이 무지무지 마려워서 인지 살짝씩 슬립이 난다. 그래도 한 번 경험했던 곳이라 무사히 성공, 혁중형께 똥마려워 죽을 것 같다고 사정하는데 옆에 영자크랙을 따라 올라오신 아주머니께서 내가 아들같아 보였는지 휴지를 주시며 저 뒤로 돌아가 대변을 보라고 하셨다. 뒤 쪽 숲으로 들어가서 변을 해결하고 개운한 마음(인수봉 등반자분들과 인수봉에게 미안했지만 그 뒤 작은 숲에는 깡통도 막 버려져 있었다. 깡통보다는야 나무에 거름도 되고 나쁘지는 않겠지..라고 속으로 위안삼는다.)으로 다시 참기름 바위를 올라 인수봉 정상이다.

내 등반을 돌아보았다. 참 힘들었다. 난 화강암 바위에서 아직 발을 디디는 요령을 모르는 것 같다. 인수봉에는 크랙, 슬랩, 침니 페이스가 전부 섞여 있지만 기본은 슬랩인 것 같다. 크랙을 손으로 잡더라도 크랙 바깥부분에서 발을 제대로 디디지 못하면 영락없이 추락이기 때문이다. 언제 인수봉 정상에 의의를 두지 않고 정말 혁중형께서 제안하신대로 벗길 1피치 10a슬랩을 톱로핑으로 여러 번 연습하는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난 아직 정말 재밍을 서투르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경험을 쌓아가면서 재밍요령을 높여가야 겠다.(하지만 재밍은 정말 힘들다.ㅠㅠ)
 
정상에 오니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지만, 난 인수봉 60미터 하강포인트에서 데이지체인을 피톤에 거는 순간이 제일 두렵다. 분명 이 피톤에 확보하다가 추락한 사람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하강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띠지만, 그런 걱정따위 나중에 생각하고 인수봉에 있는 아늑한 고인돌(?)밑에서 휴식을 취한다.
 내려오며 백운산장에서 민호형께서 막걸리를 사주셨다.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자일을 좀 더 편하게 사리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역시 선배형들께 들은 민호형 다우시다.
 
 비록 바위를 오를때는 집에 다시 가고 싶고, 등반을 취미로 선택한 것과 산악부에 입회한 것도 후회가 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하산할 때 등반하면서 치열하게 두려움에 나약해지는 내 자신과 싸운 내가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가끔 등반할 때 산악부에 남아있는 형들이 정말 신기해 보일 때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힘든 걸 버티시면서 남아계셨을까. 하지만 아마 이런 뿌듯함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때문에 이러한 등반활동을 계속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리고 등반에서 부비적대며 등반시간에 차질을 준 후배를 정말 잘했다며 다독여 주시는 선배들이 있는데 그 선배들을 뿌리치고 어떻게 나갈 수가 있으랴.
 아직은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 동계등반은 정말 힘들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나약하고 고양되지 못한 존재라 그런 힘든 과정들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약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끊임없이 인내하며 산악활동에서 정신력을 쌓아가는 이 순간들에서 만큼은 형들에게 자일을 의지하며 열심히 산을 배워가야 겠다.
 

김혁중 08-10-01 15:35
 
  사실 인수/선인 등반도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분류가 된다고 하는구나. 자신감을 가지렴. 난 취나드B 오른것에 대해선 별로 뿌듯하지 않아. 너같이 훌륭한 신입생을 데리고 취나드B를 같이 오를수 있다는게 뿌듯하지 ^-^
이기원 08-10-04 05:46
 
  혁중이, 용준이 나 이렇게 셋이서 처음으로 인수정상에 올랐던때가 기억나는구나.

그땐 정말 감동이었다. 재학생끼리 인수정상 밟은게 몇년만이었던가.

다들 정말 너무 고맙다.
김혁중 08-10-06 12:35
 
  이번 등반에도 그때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온 듯 했습니다. ㅠㅠ